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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문: 부러져버린 의자를 추억하며...

개인적인 글 2016. 2. 15. 13:29

유세차(維歲次) 병신년(丙申年) 정월(正月) 초칠일(初七日) 망우(亡友) 김씨(金氏)는 두어자 글로서 의자(椅子)에 고(告)하노니 공부(功夫)하는자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의자이나 세상 사람이 귀히 여기지 아니한 것이 안타깝다. 의자는 비록 흔한 물건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내 몸아래 둔지 우금(于今) 이십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심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抱)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연전(年前)에 나와 아내가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의자를 보다 못해 같이 가구(家具)거리로 나가서 가구점을 운영하는 지인(知人)의 도움으로 고르고 고른 끝에 적지 않은 값을 치루고 구한 의자라서 더욱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나는 너를 대려운 이래 편안(便安)한 자세로 공부를 할 수 있어 학업을 마칠 수 있었고 아내도 의자가 편안하다 좋아하였다. 또한 아이들도 태어나서 의자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져서 그 추억이 더욱 애절(哀切)하다. 이제 너를 영결해야 한다니 이는 귀신(鬼神)이 시기(猜忌)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 

 

아깝다. 의자여 어여쁘다 의자여, 너는 앉은이를 편안하게 하면서도 여러가지 날카로운 생각을 떠오르게 해 주었으므로  물중(物中)의 명물(名物)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너의 바퀴는 동그랗게 생긴대로 지금까지 한번도 말썽을 부린 적이 없고 다리는 나무로 싸여있어 발에 부드러운 느낌울 주었고, 의자의 중심봉(中心棒)은 꼿꼿히 밑판을 지탱(支撐)해 주었다. 의자의 밑판은 엉덩이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애 해 주었고 등판은 몸을 편안히 감싸주어 마치 포근한 구름에 둘러 쌓인 듯 하였다. 오랜 시간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에 너가 보여준 안락함은 어찌 다른 것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냐?


이 생에 백년동거(百年同居) 하렸더니 오호애재(嗚呼哀哉)라. 의자여. 금년 정월(正月) 초칠일(初七日) 해시(亥時)에 의자에서 일어섰다 주저 앉았는데 무심중간(無心中間)에 두두둑 하고 럭킹이 부러져 깜짝 놀라워라.  아야 아야, 의자가 두 동강이 났구나 정신이 아득하고 혼백(魂魄)이 산란 (散亂)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골을 깨쳐내는 듯, 이윽도록 기색혼절(氣塞昏絶)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이어 본들 속절없고 하릴없다. 편작(扁鹊)과 화타(華陀)의 신술(神術)로도, 장생불사(長生不死) 못 하였네. 동네 장인(匠人)에게 때이련들 어찌 능히 때일손가. 한 팔을 베어낸 듯, 한 다리를 베어 낸 듯, 아깝다 의자여, 다시 살펴봐도 쇠의 부러진 부분만 예리하구나.  


오호통재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無罪)한 너를 마치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능란한 성품과 공교(工巧)한 재질(才質)을 나의 힘으로 어찌 바라리요. 절묘한 의형(儀形)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稟才)는 심회가 삭막하다.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치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생사(一時生死)를 한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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