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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속의 또 다른 나

생활과 심리학 2011. 6. 30. 17:55

게임속의 또 다른 나(2006/07/18 23:54)

얼마 전 인터넷 유머 란에서 “현피 할 때 본명은 알고 갑시다”라는 제목의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아마도 피시방에서 있었던 일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현피’란 게임에서의 일을 가지고 현실에서 피를 본다 즉, 현실에서 폭력을 쓰는 것을 말한다.


피시방에서 게임 중이었다.

갑자기 험상궂은 남자가 피시방의 문을 박차고 들어오더니

"팅커벨 이 새끼 나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구석의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밍기적거리며 일어나더니

"니가 사랑의 요정이냐?"


위의 경우처럼 사이버상에서는 자신의 실제모습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현실에서는 힘이 약한 사람이지만 게임에서는 강한 전사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실에서는 울퉁불퉁 근육맨이지만 게임에서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게임에 몰두하고 있고 아바타를 키우는데 엄청난 노력을 쏟는다. 매일 밤마다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 속칭 “노가다”라 불리는 괴물사냥을 다니기도 하고 돈을 주고 게임용 아이템을 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돈을 주고 전문업자를 불러 게임의 아바타를 대신 키워달라고 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현실에서 일을 하는 이유가 게임을 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게임에 사용되는 아이템을 마련하기 위해서 부모를 속여 돈을 얻어내거나 다른 사람의 돈을 훔치는 일까지 일어난다. 게다가 게임 속에서 같은 게이머를 죽이는 피케이를 통해 다른 사람이 가진 아이템을 뺏거나 혹은 사기를 해서 다른 사람의 돈을 사취하는 일까지 일어난다.

사람들은 왜 이처럼 게임에 몰두할까?

먼저 게임의 보상시스템에서 만들어 내는 재미를 들 수 있다. 게임 기획자들이 뭘 알고 적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임에서 적용되는 보상시스템은 학습심리학의 규칙을 정확히 따르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보상이 빠르고 정확하게 주어질 경우 학습이 잘 일어난다고 한다. 현실에서의 보상은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야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고 보상의 확실성도 분명히 떨어진다. 그러나 게임에서의 보상은 대부분이 바로 이루어지고 노력에 대한 보상의 확실성은 현실에 비하여 매우 높다. 물론 어떤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지는 경우에 따라 달라지지만 적어도 최소의 보상은 이루어지고 잘만 하면 매우 비싸고 희귀한 아이템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재미만 가지고 아바타를 키우는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을 설명할 수 없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다양한 욕망을 게임에서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상당 수가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것이 많다. 현실에서는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되지만 게임에서는 그것이 일정부분 허용된다. 행여 벌을 받는다고 해도 벌의 정도도 약할 뿐만 아니라 그 벌을 받는 것도 게이머가 아니라 게임의 아바타이다. 따라서 게임을 하는 사람은 처벌의 위협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게임에 몰두하게 하는 이유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을 하는 사람 스스로 아바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실에서의 자신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외모와 성격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개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아바타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특히 현실에서의 자아정체감이 분명하지 않거나 자아정체감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게임의 아바타에 집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실에서의 나는 직장에서 윗사람들의 잔소리와 동료와의 경쟁 그리고 능력 있는 후배들의 압박에 시달리는 초라한 직장인이지만 게임에서는 수많은 조직원을 거느린 혈맹의 군주로서 천하를 호령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초라한 현실에서의 삶보다는 화려한 사이버 상에서의 삶을 유지하고 싶을 것이다. 

자아란 자신과 다른 사람이 분리되는 독립적인 개체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자아개념이 한 개인에게 지속적으로 나타날 경우 자아 정체감이라고 한다. 자아정체감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추상적인 특징이며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경우처럼 현실공간에서의 나의 모습과 사이버 상에서의 나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면, 그리고 현실의 보내는 시간보다 사이버 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면 그 사람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보아야 할까?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친구도 없이 게임만 하는 사람으로써 자신을 받아 들여야 할지 아니면 혈맹의 군주로써 조직을 관리하고 부하를 독려하며 전략을 구사하는 아바타를 자신으로 받아들여야 할 지 궁금해 질 수 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현실과 사이버상의 정체감에 혼란을 경험하고 있어 현실의 규칙을 사이버공간에 적용하기도 하며 반대로 사이버 공간에서만 일어나야 할 일을 현실에서도 그대로 하려는 사람도 생기며 이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사이버 상에서 나타나는 정체성을 객관적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꿈과 상상과 같은 주관적 의식의 산물에 불과 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또한 사이버 상에서 만들어지는 정체성은 마치 콜라주가 만들어 지듯이 경험한 다양한 속성들을 땜질해서 만든 것이고 따라서 포괄적이기 보다는 개별적인 속성자체가 하나하나가 개인의 정체성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아는 매우 복잡하고 다면적인 속성을 가진다. 사이버상의 정체감이 변화무쌍해서 혼란을 줄 수 있다고 해도 이제 사이버 세상을 완전히 버리고 살수는 없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마도 현실에서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정체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사이버 상에서의 다양한 정체감을 즐기는 것도 현실에 바탕을 둔 즐거움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자는 지금 현재에도 매우 유효하다. 나비의 꿈을 꾼 장자처럼 우리가 사이버 세상을 경험하는 것인지, 사이버 세상의 내가 현실을 경험하는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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