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선발에 헌법과 한국사는 반드시 필요한가?

생활과 심리학 2011. 7. 22. 18:17

공무원선발에 헌법과 한국사는 반드시 필요한가? (2007-05-01)

PSAT가 행정고시에 도입된 후 오랜기간 시험과목으로 포함되어 있던 헌법과 한국사 과목이 2007년 부터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변화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이 한마디 씩 내놓고 있다. "모든 법의 기본이 되는 헌법을 모르고 어떻게 공무원이 되어 공무를 수행할 수 있느냐?"라는 일반적인 이야기 부터 "7급과 9급의 하위직은 헌법을 보고 들어오는데 5급은 헌법시험을 안보면 나중에 하위직에게 헌법에 대하여 문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행정고시 수험생의 다소 성급한 걱정까지 있다. 한국사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대부분이 "국가의 공무원이라면 자신의 나라에 대한 역사의식은 있어야 할 것" 이라는 의견들이 많다. 또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공무를 수행하는데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이런 저런 의견들이 모두 듣기에 타당한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제는 측정의 타당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보아야 한다. 측정의 타당성이란 측정을 하는 도구가 과연 측정하고자 하는 내용을 제대로 측정하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선발도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특성은 선발한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제대로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선발도구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실제 일도 잘할 때 그 선발도구는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민간기업에서도 국어와 영어 한국사 같은 특정교과목을 가지고 입사시험을 보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의 민간기업의 동향을 보면 지식평가는 거의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과거와 같은 특정교과목의 지식여부를 측정하여 선발하여 본 결과 그 성적과 업무 능력간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국가의 공무원도 민간기업과 마찬가지로 성과를 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성과를 내야 하는 사람이라면 선발을 할 때 성과를 잘 낼 수 있는 사람 즉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맞는 지를 먼저 평가 해보아야 한다. 최근 선발의 트랜드는 일을 잘하는 능력 즉 역량을 중심으로 채용하려는 것이다. 다시말해 선발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이사람이 채용되었을 때 일을 잘 할 수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예언인을 중심으로 측정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선발여부를 결정한다. 그런데 일을 잘 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나누어 보면 오랜 시간을 통하여 학습하고 연습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반면 단기간의 교육을 통해서 쉽게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선발에 사용되는 측정도구에서는 이 두 가지 능력 중 오랜 시간을 통하여 학습하고 연습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 적절하며 후자의 경우는 선발 후 교육을 통하여 가르치면 되는 것이다.  전자와 같이 오랜시간의 학습과 연습이 필요한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 PSAT와 같은 적성평가이다. 

과거 행정고시에 사용된 시험문제 자체를 살펴보아도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기존의 선발시험에 사용되던 헌법과 한국사의 시험문제를 살펴보면 정말 업무에 필요한 수준의 헌법지식과 한국사 지식을 측정하려는 문제인지가 의심스럽다.  다음 실제로 출제된 한국사 문제를 보자.

문 28. 1970년대 이후 남북한의 통일방안과 관련하여 옳은 것은?
①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서 남한과 북한은 자주,평화, 민족적 대단결의 3대 통일원칙에 합의하였다
② 1980년에 북한이 제안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은 2국가 2체제를 목표로 하고 있다
③ 1983년 남한의 ‘6.23선언’은 남,북한의 인구비례에 의한 총 선거를 주장한 것이다
④ 1995년 남,북한은 ‘한민족공동체안’에 합의하였다
⑤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한은 유엔감시하의 통일방안에 합의하였다

연도를 묻는 것은 헌법도 마찬가지 이다.

문 20. 역대 헌법의 정당관련 규정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 제2차 개헌에서 정당에 관한 규정이 신설되었다
② 1962년 헌법에 위헌정당해산제도가 신설되었다
③ 1962년 헌법에서는 국회의원 입후보자의 정당추천이 강제 되었다
④ 1972년 헌법에 국회의원이 당적을 이탈하거나 변경할 때에는 국회의원직이 상실되도록 하였다
⑤ 1987년 헌법에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조항이 신설되었다

이 문제를 맞추기 위해서는 각 사건이 일어난 연도를 모두 외워야 하는 단순암기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몇몇 문제의 경우는 단순히 합격자와 불학격자만을 구분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제된 문제라 할 수 있다. 물론 수험생들의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수험생을 변별하는데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넘어서는 극히 지엽적인 내용을 가지고 출제를 하였을 가능성도 높다. 이런 경우라면 소위 "불의타"를 운좋게 공부한 사람은 좋은 점수를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공무원들이 자신의 나라에 대하여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과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을 알아야 한다는 지적 모두 맞는 말이다.  이 사람들 모두는 역사도 모르는 사람들이 제대로된 국가관을 가지고 국민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국가의 기본법도 모른채 법에 근거한 행정집행이 제대로 이루어 질 것인지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실제 업무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또 합격하면 모두 잊어버릴 내용을 오로지 합격에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열심히 외우는 것은 결코 바람직 한것이아니다.  꼭 필요하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헌법과 한국사에 대하여 꼭 필요한 지식을 측정할 수있는 표준화된 시험을 만든 후 공무원 시험의 합격자들이 이 시험에서 설정된 최소점수를 넘을 수있는지만 평가하는 것도 좋은 방안 일 것이다. 또다른 방법으로는 공무원 선발 이후에 교육과정에 포함하여 한국사와 헌법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고 정기적으로 공무원을 대상으로 헌법과 한국사에 대한 보수교육을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채용은 모든 조직에서 최우선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채용단계에서 첫단추가 잘못꿰어지면 계속 조직을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변화는 귀찮고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할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열매는 매우 달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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